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연평도 포격전 (문단 편집) === 혼란 속에서 활약한 해병들 =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youtube(ZcHZYIz8268)]}}} || || '''[연평도 포격도발 7주년] 3인의 해병이 말하는 7년 전 '그날' {{{-1 | 2017.11.22. 국방TV}}}''' || || 교전 당시의 계급이다. || * '''손병문 해병 중사, 전지호 해병 상병''': 포격 소리가 나는 순간 밖으로 달려나가서 유치원생들의 대피를 도왔고 이후 할아버지와 할머니 등 주민들을 [[방공호]]로 대피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. * '''정연하 해병 일병''': 23일 [[연평도]]에 도착한 뒤 포격에 우왕좌왕하던 신병 10여 명을 침착하게 인근 교통호로 안전하게 대피시키자마자 신병교육대[* [[해병대 교육훈련단]], 육군의 [[신교대]] 같은 개념이 아니라 자대 배치 전 대기 및 사전 교육을 맡는 일종의 대기대이다. [[보충중대]]의 확장판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.]에 포탄이 떨어졌다. 하마터면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. * '''남정일 해병 소령, 정찬호 해병 상사''': 포격이 시작되자 마을 [[유치원]]으로 달려가 미처 피신하지 못하고 [[놀이터]]에서 울고 있던 20여 명의 [[어린이]]와 [[교사]]를 방공호로 대피시켰다. * '''차재원 해병 하사''': 정비소대 이진규 일병을 비롯해서 부대원들과 함께 부대 거점으로 피신 도중 적의 무자비한 포격이 쏟아져 그 지점에 있던 모든 [[해병#s-2]]이 부상을 당했다. 다행히 부상을 면한 차재원 하사는 "내가 가서 구급차를 불러 올 테니 너희는 여기서 반드시 살아 있어라"라는 말을 남긴 후 화염 속으로 뛰어들어갔다. 이후 포격이 멈추고 차재원 하사의 약속대로 구급차가 잠시 후 도착하여 위험했던 해병들은 목숨을 구했다. * '''조수원 해병 일병''': 정비소대 조수원 일병은 1차 포격 당시 부상을 당해 구급차 후송을 대기하고 있었다. 하지만 부상자가 많아 구급차의 승차 인원이 제한되어 조 해병은 자발적으로 나중에 탑승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조 해병의 부상을 목격한 동료 해병 4명이 곧바로 조 해병을 들것에 싣고 포격을 피해가며 의무대로 후송, 조 해병의 생명을 구했다. * '''배병규 해병 중사''': 부대 순찰 중 포격으로 대피호 쪽으로 차를 돌리는 중 부상당한 해병을 발견해서 빗발치는 포격을 뚫고 부상병을 태워서 의무대로 향했다. 부상병은 상당한 중상을 입어 피가 차 내부를 흠뻑 적실 정도였지만 신속한 후송으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. * '''이충민 해병 상병''': 포격을 받은 연평도는 불바다가 되었고 화재 진압이 시급했다. 부대 소방차를 출동시키려 했으나 정전으로 전동 셔터가 열리지 않는 상황, [[지게차]] 운전병이었던 이 상병은 기지를 발휘해서 지게차로 셔터를 박살내서 소방차를 출동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, 7포대 탄약고 화재를 신속하게 진압해서 자주포들이 대응 사격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. 그는 이 공로로 2011년 10월 [[국군의 날]] 기념식 훈장포창수여식에서 [[이명박]] 대통령으로부터 개인포상 대통령표창을 수여받았다. [[http://www.haebyeong.com/mcnews/150935|#]] * '''임준영 해병 상병''': 적의 포격 속에서 자신의 철모가 불타며 녹아내리는 와중에도 대응 사격에 열중하였다. [[https://www.donga.com/news/Politics/article/all/20101126/32875735/1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